<Di Provenza il Mar, il Suol> -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G. Verdi>
해석과 묘사에 따라 어떤 작품은 삼류 치정 소설이 되고, 어떤 작품은 고전소설이 되기도 한다.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고전이라기엔 뭔가 부족한, 그렇다고 삼류소설도 아닌, 그 중간 쯤에 위치한 작품이었고 할까?
사실, 뼈대만을 보면 토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같은 고전도 막장 드라마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아버지의 외도로 비밀 속에 태어난 사생아의 인생, 그리고 복수. 그 아버지를 닮은 아들과 전혀 닮지 않은 아들. 언제나 광대처럼 타인을 의식하는 알맹이 없는 인생. 이런 점만을 부각하면 고전도 요즘에 쉽게 볼 수 있는 막장 TV 드라마와 별로 다르지 않다.
철없는 소년처럼 앞뒤를 계산하지 않고 '사랑'에 빠진 알프레도Alfredo.
닳고 닳았다고 표현되어지지만 사실 내면만은 전혀 닳아빠진 적이 없는 순수한 비올레타Violetta.
신사적이고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며, 올바른 균형감각으로 마지막엔 비올레타에게 용서를 구하기까지 하는 멋진 아버지 제르몽George Germont.
삼류 소설이 될 수도 있었던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동백아가씨La Dame Aux camélias'는 그렇다고 고전이 되지도 못할 운명이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이 작가 자신의 각색으로 연극무대에 올려진 뒤, 운명은 베르디Giuseppe Verdi의 손을 이용해 이 작품을 고전 중의 고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자신의 아들을 잘못된 (La Traviata는 길을 잘못 든 여인을 뜻한다) 연인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그녀의 약점인 순수함을 이용할 줄 아는, 그리고 아들을 설득하기 위해 고향의 풍경과 아버지의 고통을 이용하는, 어떻게 보면 신사적이고 어떻게 보면 잔인하기도 한 아버지 조르쥬 제르몽.
이 아리아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 - 'Di Provenza il Mar, il Suol' 역시 이중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직역하면 '프로방스의 바다, 흙'이 된다.)
드라마 속의 비올레타를 사랑하게 된 관객들은 이 시점에서 아버지의 설득에 알프레도가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오직 고통받고 있는 비올레타를 구해주기만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희생해서 알프레도를 돌려보내려는 순수하고 가련한 여인 비올레타. 1막을 통해 내면을 고백한 그녀, 관객들은 이제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의 편이 되는 것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이 아리아가 끝나면 관객들은 드라마를 일시 정지시키고 박수를 치고 만다. 제르몽을 미워해야 할 관객들이 그 노래 앞에서 박수를 치다니!
아리아 하나로 삼류 드라마가 초특급 고전 오페라가 되는 순간 가운데 하나다. 물론 라트라비아타에는 이런 아리아가 넘쳐난다.
결국, 베르디의 음악이 뒤마의 소설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고 만 것이다.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 - 'Di Provenza il Mar, il Suol'은 명성만큼이나 많은 명연주가 남아있다. 우선은 전설로 남아있는 연주다. 카푸칠리Piero Cappuccilli가 노래한 1967년 연주다. 아리아는 55초부터 시작된다.
아버지가 느껴지는 이 연주는 대중적으로는 많이 사랑받지 못한 편이지만 잘 들어보면 정말 아버지가 느껴진다. 드라마 속 인물로 변신한 카푸칠리의 완벽한 음정도 별 다섯 개짜리다.
이보다 10년 전에 녹음된 바스티아니니Ettore Bastianini의 연주는 가장 손꼽히는 유명한 연주 가운데 하나다. 귀족다운 당당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서는 이 장면에 필수적인 호소력은 조금 떨어지지 않나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연주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완벽하다. 바스티아니니의 음색이 마치 1962년생인 흐보로스토프스키와 비슷한 느낌이다.
빛나는 음색의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Dmitri Hvorostovsky의 연주는 귀를 즐겁게 하기엔 넘칠만큼 충분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의 연기는 알프레도의 양아버지 같은 느낌이 든다. 아리아는 2분 20초부터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특별한 영상을 하나 소개하자면,
72세의 테너 플라치도 도밍고Placido Domingo가 바리톤으로 메트로폴리탄에서 데뷔 공연을 하는 모습이다. 연주를 평가하기 전에 아마도 모두가 저절로 박수를 칠 수밖에 없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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