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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기억, 나?



<기억, 나?>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떠오른다.

그분의 얼굴과 미소.
영화 속 인물처럼 현실감이 없다.
잘 알지 못하는 영화배우 같은 느낌이다.
수십 년을 알고 가족으로 함께했음에도 지금 그분은 철저히 타인과 같다.
돌아가신지 십 년이 훨씬 지났다.

그 시간과 함께 기억도 옅은 색으로 변한다.

내가 지난 생애와 영혼으로 존재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 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오직 지금의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의 나는 내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죽음이 다가오고 지금의 육체가 사라지면

'나'의 정체성은 다시 과거의, 혹은 본래의 나로 돌아갈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새로운' 것으로 얻게 되고 지금의 기억은 '과거의' 기억이 되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를 구성하는 기억의 내용에 따라 내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각성의 순간을 경험하며 지금까지 자신으로 느끼고 알던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타인으로,

옅은 기억 속에만 살아서 존재할 것이다.


물론, 역설적이지만 그렇게 지금의 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변화될 뿐이다.

지금의 나를 어딘가에 남겨둔 채로...


ⓒcopyright by 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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