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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찬 바람이 부는 풍경






<찬 바람이 부는 풍경>



신도림역,

밤이 늦어간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에 바람까지 휘이, 휘이 불어댄다.
걸음이 빨라진 사람들 틈에 섞여 얼굴에 바람을 맞아본다.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바람을 냄새 맡아본다.

평소엔 볼 수 없던 풍경.
기타를 멘 젊은이가 보인다.
마이크를 앞에 세워놓고, 아마도 노래를 부르겠지.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간다.
기타청년앞을 지나는데 소리가 시작된다. 기타 소리.
제법 들어줄만하다.
리듬, 하모니, 바람이 어우러진다.
제목을 알 수 없는 팝송.

나 혼자 살아있는 느낌.


내 의식만이 느껴지고 다른 모든 것들-바람과 사람들 그리고 기타와 노래-은 죽어있는 움직임처럼 보인다.

고요해지는 느낌, 그건 의식과 만나는 느낌이다.
의식이 만들어낸 풍경과 인물과 소리와 온도와 다른 사람들의 의식(그런 것이 있다면)은 모두 배경이 된다.
배경은 내 의식과는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나만이 주도적인 느린걸음을 걷는다.
배경은 예정된 대로, 그 속도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만들어가며 나를 지나간다.

다만,
노래소리가.
그 노래소리가,
가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소리가 내 의식 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나는 바람을 액체처럼 느끼며 물 속을 걸어가듯 느릿느릿 내 속도대로 앞으로 나아간다.

거기엔 뭐가 있는걸까?
저 앞엔 뭐가 있길래 의식은 내 몸을 그리로 움직여 가는걸까?

음악은 계속되고,
찬바람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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