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만든 영화
[뭐든지 문제가 생기면 대통령 탓을 하는 사람도 있다. 미리 밝혀두지만 이건 그런 관점으로 쓴 글이 아니다.]
영화는, 혹은 다른 어떤 부류의 문화든, 직접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그 사람들이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책임이라고 해서 무슨 중대한 문제나 법적인 책임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저, 예술이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창조하고 나누는 행위라고 할 때,
자신의 창작물에 있어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책임을 얘기하는 거다.
얼마 전에 한국영화 몇 편을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한국영화의 수준이라는 게 있다면(보편화된 수준이라는 게 정말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수준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리고 그 수준이 다른 문화권에 비해 높거나 낮은 건 어떤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걸까?
이를테면 경제논리, 문화적인 역사성 등의 요인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마치 학자들의 시각으로 통계를 들여다보는 식의 결론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간단히 생각해봤다.
가볍지만 진지한 추론이다.
예술행위를 통해 예술가들이 얻는 건 뭘까?
만일 그들이 원하는 게 경제적 성공이라면, 혹은 사회적 명성이라면, 혹은 인간적인 교류를 통한 자아의 회복이라면, 그런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건 예술가들이, 성장을 하는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진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가치관에서 왔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중간에, 어느 시점에 영향력 있는 선배나 스승을 만나서 그 가치가 생성되거나 바뀔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가치관이라는 건 역시 사회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사회적인 가치라는 건 위대한 스승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한 사회에 커다란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이 만드는 가치라는 것이다. 이 스승이란 한 명의 인물일 수도 있고 몇 세대를 거쳐 내려온 사상의 종합일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나라 영화(혹은 어떤 문화행위)의 가치 기준이 결정된다. 혹은 그렇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한 사회의 리더가 제시하는 비전이 그 사회 구석구석에 비치면서 많은 어린이들이 영향을 받고 그들이 성장해서 사회의 중심 구성원이 되면 그 가치관에 의해 사회가 형성된다는 얘기다.
요즘의 어린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은행원이 되고 싶다고 한다. 공무원이 꿈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꿈의 근원이 경제체계를 설계하고 자본을 관리하는 의미의 은행원이나 국민에게 봉사하는 의미의 공무원이 아니라 단지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게 현실이다.
한 세대 전, 같은 질문에 대해 그 당시 어린이들은 대통령이나 과학자가 꿈이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꿈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지금과는 달리 '꿈이기에 꿈꾼다'는 '꿈다운 꿈'이었던 걸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변화가 우리 영화의 변화를 가져온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원인 외에 다양한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건 단지 비유적인 상상일 뿐이지만 이것을 인정하면 대안이 생긴다. 그건 우리 사회의 리더, 즉 상징적으로 '대통령'이 제시하는 삶의 가치가 다음 세대의 영화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사회적 리더가 예술행위의 근본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지금의 한국영화는 한 세대 전의 대통령이 만든 거다.
물론 비약이다.
하지만 이런 비약을 사실로 받아들일 때, 대통령은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해 국민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그 결과 공부만 열심히 하고, 안정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마음 깊이 새기는 꿈 꾸는 사람이 이 사회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영화 수준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한다.
이게 우리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근본적인 대책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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