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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션 Mission, 그리고 하녀와 싸움의 기술 - 연속해서 본 주말의 영화



영화 미션 Mission, 그리고 하녀싸움의 기술연속해서 본 주말의 영화


오랜만에 켠 TV에서 영화를 하면 외면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미션Mission같은 작품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좋은 영화와 좋은 책의 공통점은 볼수록 새롭다는 점이다. 

인간의 인지 능력 때문일까? 처음에는 놓쳤던 부분이 보인다. 그리고 반복할수록 더 보인다. 그러니까 많이 반복하면 많이 보게 된다. 얼마나? 글쎄,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보자!'하고 본 건 없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볼수록 계속 뭔가 나올 것만 같다. 

그리고 어느 지점이 지나면 작가나 감독도 모르던 것을 찾게 되기도 한다. 이런 게 명작의 특징이다. 그리고 미션은 역시나 명작이다.


내 경우를 돌아보면, 어릴 때는 전반적인 이미지로 기억하는 것 같다. 미션의 이미지는 폭포와 오보에의 소리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조금 나이가 들어 정치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자 이 영화가 얼마나 폭력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했는지가 보였다. 그리고 그 시대가 만든 비극도 볼 수 있게 된다. 



원주민과 신부들을 다 죽인 참극에 대해 추기경이 자신의 결정에 대해 후회 섞인 말을 하자 포루투칼 쪽 정치가로 보이는 사람이 한마디 한다. 상황이 만든 일이라고.

그 말에 추기경은 눈물을 흘리며 나지막이 이런 말을 내뱉는다.


'그 상황을 만든 게 바로 인간이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질투 때문에 사랑하는 동생을 죽인 용병출신의 노예상인이 왜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을 만들며 폭포 위로 올라갔는지 예전에는 알 수 없었다. 그 육체의 고통이 클수록 마음속의 지옥이 덜 느껴지기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산산이 파괴한 또 다른 가족들-폭포 위의 원주민들 앞에서 그는 용서와 사랑을 경험한다. 그리고 거기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아간다.


하지만 정치적인 논리 때문에 인간의 가치가 짓밟히고 생명이 말살되는 상황에서 그들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신과 약속한 진실한 사랑의 실천을 할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싸울 것인지를.

대사 없이 20분 가까이 진행되는 마지막 전투장면은 정말 설명이 조금도 필요없는 설득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이게 명작의 힘이다. 


어쩌면 이야기라는 게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좋은 영화를 보고 TV 앞에 앉아 있었다. 재미있는 놀이기구 앞을 떠나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마침 케이블 TV에서 한국영화 하녀를 하고 있었다. 시작 부분이었다. 눈길을 끈다. 카메라와 인물과 소리가 꽤 매력적이다. 미션을 본 다음에 이어서 봐도 괜찮을 만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볼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까지 다 봤다. 이어서 다른 채널에서 싸움의 기술을 하고 있길래 역시 끝까지 봤다.



글쎄, 하녀는 좀 심했다. 처음 몇 장면이 지나면서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인물과 납득할 수 없는 화면이 조금씩 늘어나더니,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도대체 저런 줄에 매달려서 죽을 수 있을까 싶은 엉성한 소품으로 자살을 하는 배우와 그 장면을 영화상으로 대략 20초 가까이나 제자리에 앉아서 보고 있는 세 명의 어른과 세 명의 어린아이들. 대체 감독은 이 장면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뭘까? 대체 무슨 의미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만들고 그걸 영화로 옮겼을까?



싸움의 기술은 하녀보다는 훨씬 훌륭했다. 사실 하녀만큼이나 공감할 수 없는 장면들이 꽤 많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배우가 관객을 설득하고 만다.


말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외계인 이야기도, 터무니없는 괴물이야기도, 지나치다 싶은 슈퍼영웅의 이야기도, 모두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그걸 재미있게 본다는 게 바로 그 증거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소재나 인물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영화를 만드는 건 대화와 비슷한 것 같다. 혼자서 떠들자면 상대가 필요 없듯이 영화는 관객이 보지 않으면 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관객이 영화의 필수 요소라고 하는 거다. 그런데 어떤 영화는 그 중요한 관객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대화를 하자고 불러놓고 혼자서 이상한 얘기를 떠들고 있는 셈이다.


능력이 부족해서?

어쩌면 능력이 부족한 게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능력이란 할리우드의 성공작처럼 매끄러운 영화를 만드는 능력이 아니다. 관객을 설득할 마음과 자세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어쩌면 이런 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식'이 크게 작용하는 부분인 것 같다. 


좀 웃기고, 좀 자극적인, 좀 야한, 이런 얘기가 소위 '먹힌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면 우리는 그 영화를 공감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내가 본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좋았던 걸 묻는다면 나는 여선생과 여제자라고 대답한다.

아마 못 본 분들이 대부분일 듯하다. 제목 때문에 보지 않은 분들도 많을 테고.

언젠가 우연히 지방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숙소에서 본 영화다. 



꽤 감동적인 영화였다. 교육과 교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무겁지 않아서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이만큼 재미있는 시나리오에 왜 저런 제목을 붙였을까? 역시 좀 웃기고 좀 야한 얘기가 먹힌다는 생각에 빠진 기획자들의 생각이었을까?


얘기가 길어졌지만, 결론은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리 관객들도 미션을 보고 감동한다. 움베르토 에코를 이해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즐거워한다.

대체 우리가 얼마나 바보라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할리우드에서는 흥행을 목적으로 영화를 만들 때 중학생 수준을 타겟으로 한다고 한다. 동시개봉과 멀티플렉스에 얽힌 경제적 논리가 그 바탕에 있다. 하지만 결국, 관객은 거기에 있는 거다. 어떤 논리로 변명해도 관객 없이는 영화도 없는 거다. 


이제 우리 영화는 제작 수준을 탓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수준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나 역시 영화의 중요한 한 지점을 차지하는 한 명의 '관객'이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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