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음유시인들의 부활, 카를 오르프 Carl Orff 카르미나 부라나 Carmina Burana

이름 없는 음유시인들의 부활, 카를 오르프 Carl Orff 카르미나 부라나 Carmina Burana


“여태까지 내가 쓴 모든 것은 없앨 수 있다. 나의 작품 컬렉션은 《카르미나 부라나》와 함께 시작된다.”

-카를 오르프Carl Orff, 출판사에 보낸 편지에서


카를 오르프, Carl Orff


자신의 작품을 이만큼 사랑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는 원래 요한 슈밀러가 편찬한 노래집의 제목이었다. 카를 오르프가 태어나기 12년 전인 1847년, 요한 슈밀러는 12세기에 만들어진 라틴어, 초기 독일어 노래를 모아 이 노래집을 편찬했고 이후에 카를 오르프가 이 책에 수록된 서정시를 오라토리오의 가사로 썼다.


carmina burana


노래집은 독일 남부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는데, 세속적인 시와 노래를 비롯해 라틴어로 쓰인 축제의 희곡까지 천 편이 넘는 노래가 포함되어 있다. 노래를 쓴 음유시인(방랑하는 성직자와 학자)들은 자신들의 세속적인 삶을 소재로 도덕시, 풍자시, 연애와 술을 다룬 시를 썼다.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1001, 2009.6.1, 마로니에북스


요한 슈밀러의 노래집에는 이름 모를 음유시인들의 시와 노래가 가득했다. 대부분 젊은 수도사들이라고 추측되는 이 작품의 작가들은 7백 년이 지난 뒤 자신의 시가 20세기의 화성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카를 오르프는 슈밀러의 노래집에서 24곡을 가져왔고 1곡을 스스로 작사했다. 그리고 같은 제목을 붙인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라틴어로 보이렌의 시가집詩歌集, SONG OF BEUREN이라는 뜻이다.


수도사들의 작품이라고 하지만 대단히 외설적인 내용과 세속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다. 일부는 13세기 음유시인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가사를 모르고 들어도 왠지 원시종교의 느낌이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광고를 통해 더 많이 알려진 음악이기도 하다.

가끔은 희극적인 드라마에서 과장된 비극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 운명이여 

늘 변하는 달과 같이

돌아오르다가 기우는 

그대 운명이여


얄궂은 운명은

때론 가혹하게

때론 친절하게 우리를 대한다

우리의 욕망을 희롱하고

얼음과 같이 녹고 마는

권력과 빈곤을 주기도 한다


운명을 노래하는 이 첫 번째 곡 <운명의 여신이여O Fortuna>의 가사는 역시 종교적인 감각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기독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카를 오르프는 이 작품을 오라토리오 형식으로 작곡했다. 지금은 연주회에서 더 많이 연주되지만, 원래는 무대에서 가수들과 무용수들이 연기하는 극장용 음악이다. 

뭔가 어두운 비밀을 간직한 것 같은 중세 유럽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카르미나 부라나는 들을수록 여름날의 열기 같은 강렬한 에너지를 경험하게 한다.

지치지 않는 젊음, 끝을 모르는 운명, 절망하기보다는 정복하는 투사의 의지가 배어나는 음악이다.


카를 오르프는 카르미나 부라나에서 대위법을 외면하고 단순한 화성적 방법으로 자신만의 길을 간다.

중세 교회풍의 음향과 20세기적인 화성이 교묘하게 결합한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이 음악을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에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어쩌면 세속적인 감각을 다뤘기 때문에 이런 평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카를 오르프는 카르미나 부라나 이후의 작품들에서 독자적인 양식을 견지해나갔다.

서두에 쓴 것처럼 그에게 카르미나 부라나는 새로운 운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작품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음악 속에서 우리는 이름 없이 사라진 시인들과 함께 새로운 생명을 얻고 운명을 향해 나아가는 카를 오르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문화적인 융합, 빌라 로보스 Heitor Villa-Lobos 브라질풍의 바흐 Bachianas brasileiras no.5

▶독재자와 간신배들도 감동한, 위풍당당 행진곡 Pomp and Circumstance Military Marches, Op. 39

▶새로운 차원으로 안내하는 천재, 무소르그스키 Mussorgsky - 전람회의 그림 Pictures at an Exhibition

▶화려한 색채, 눈으로 보는 음악, 라벨 Maurice Joseph Ravel - 볼레로 Bolero

▶바로크, 테크노, 기괴한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