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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

5. 동물들과 이웃하기, 혹은 동거하기



5. 동물들과 이웃하기, 혹은 동거하기


이사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밤새 이상한 소리 못 들었어?"


아내가 물었다.


"꼭 맷돌을 시멘트 바닥에 끌고 가는 것 같은 소리 하고, 코끼리가 침 뱉는 소리 같은 거."


아내는 동물의 왕국에서 코끼리가 숨을 내 쉴 때 입술을 푸드덕거리는 소리를 침 뱉는 소리라고 했다. 

한밤중 고요한 산속에서, 도시에서 살 때는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들리자 아내는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그래, 그러니까 맷돌 끄는 소리도 코끼리 발에서 난 거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누가 이런 곳에서 코끼리를 키울리도 없고, 자연상태의 코끼리라면 더욱 말이 안 된다. 여기는 동물원도 아프리카도 아니니까. 

너무 고요해진 환경에 누구나 예민해질 수 있는 거라고, 약 5분간에 걸친 아침 회의에서 우리는 결론을 냈다. 그리고 배가 고파졌다.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거실로 나가 커다란 창 밖으로 산과 나무를 감상했다.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만난다. 밖에는 작은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코끼리는 보이지 않는다. 


양파를 썰어서 오믈렛을 만들었다. 당근과 셀러리를 추가하고 검정올리브를 섞는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고 계란에 섞은 재료를 올리면 맛있는 소리가 난다. 마지막으로 슈퍼에서 사온 슬라이스 치즈를 위에 얹으면 뒤집기가 버거울 만큼 두꺼운 오믈렛의 기초가 완성된다. 이걸 뒤집으려면 두 개의 도구가 필요하다. 뒤집기 없이 요리사처럼 팬을 흔들다가 바닥에 떨어뜨린 경험이 몇 번 있어서, 이젠 꼭 도구를 사용한다. 내가 2인분의 두꺼운 오믈렛을 만드는 동안, 아내는 옆에서 빵을 굽고 샐러드를 준비한다.


"우리 꼭 미국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같다."


식탁을 놔두고 우리는 밖이 보이는 거실에 앉아서 커다란 오믈렛과 샐러드, 잼을 바른 식빵에 오렌지 주스를 곁들인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진짜 영화 속의 여유 있는 미국인이 된 모양새였다. 전부 대형 슈퍼에서 산 재료들이지만, 웃음이 나온다. 충족감이 드는 아침이었다. 


코끼리를 본 건 그 순간이었다. 물론 진짜 코끼리는 아니다. 하지만 코끼리만큼이나 충격적인 출현이었다. 키는 2미터 가량, 검정에 가까운 갈색 털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갈기와 꼬리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은 마당 건너편에서 오믈렛을 먹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코끼리 침 뱉는 소리를 내며, 입술을 푸드덕 거린다. 앞발을 들어서 바닥을 긁고 있었다. 맷돌 끄는 소리였다. 당연히, 더 이상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나가보자."


나더러 나가서 쫓아보라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아내는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급히 일어섰다. 호기심 가득한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4:6 정도 섞인 채로, 나는 아내를 뒤따라 밖으로 나갔다.


마당 사진

ⓒcopyright by 나람


마당은 가로 20미터 세로 10미터 정도의 크기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마치 2층 마당이 있는 것처럼 계단 6개를 올라가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넓은 공터가 있다. 공터 옆으로 창고가 한 개 있었다. 

여기까지는 이미 이사 전에 알고 있던 내용이다. 집 바로 옆에 뭐가 있는지 일부러 알아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었으니까, 창고 안에 뭐가 있는지 따위의 걱정은 하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물론 집주인도 부동산 사장님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우리가 속은 건가?'


10미터짜리 마당을 가로질러가며 나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집에서 1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가축(가축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지만)을 키우고 있으니, 혹시 전염병의 문제는 없을까? 냄새는 심하지 않을까? 파리가 많이 생길 텐데, 이런 엄청난 비밀을 숨기고 계약을 했으니 계약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맞는 거겠지? 다시 이사하려면 어느 쪽으로 집을 알아봐야 하나? 다시 도시로?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질문이 만들어졌다.


"넌 이름이 뭐야?"


이런! 내가 생각에 빠진 사이에 아내가 '말'을 만지고 있었다. 저 거대한 녀석이 발길질이라도 하면 어쩌지? 급하게 움직이면 말을 자극하게 될까 봐, 나는 의식적으로 속도를 줄여 천천히 아내에게 다가갔다. 


"위험해, 뒤로 물러서."


나는 아내 뒤에서 작게 속삭였다. 그 순간 말이 나를 바라봤다. 눈동자가 내 주먹만 하다. 깊다. 뭔가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눈빛이다. 부드럽다. 그 말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익숙한 동작으로 아내의 손바닥을 핥아본다. 그리고 갑자기 '코끼리 침 뱉는 소리'를 냈다. 놀란 내가 아내를 잡아끌었다.


말, 앞 모습

ⓒcopyright by 나람


"졸리에요."


등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승마용 바지를 입고 모자를 쓴 젊은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청년 하나가 안장을 어깨에 짊어지고 따라온다. 이게 뭐지? 점점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엉덩이가 안젤리나 졸리처럼 커다랗다고, 졸리라고 불러요."


말 얘기였다. 

이 말, 암컷이다. 

졸리. 


그녀의 이름은 졸리였다.

말, 졸리의 옆 모습

ⓒcopyright by 나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