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빛, 김영갑의 두모악>
새벽에 식탁에 앉아 물 한모금을 마시다가 벽에 걸린 액자에 시선이 멈췄다.
제주도에서 사 온 포스터를 동네 액자가게까지 정성스레 모시고 가서 틀을 만들고 유리를 끼워 벽에 건 게 4년 전이다.
5년 전인가?
그 때 살던 집은 실내가 어두웠다.
2층인데도 사방에 빌딩이 가득해서 빛이 들어올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시 한 복판, 나무 한 그루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 한조각 만나지 못하고 살던 때였다.
그래도 그 전에 살던 곳에 비하면 훨씬 넓어진 공간이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공간만 필요한 게 아니다.
숨 쉴 공기와 먹을 음식과 함께 '빛'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 게 그곳에서였다.
공간이 커져서 숨 쉴 공기가 넉넉할텐데 왜 이렇게 답답할까?
마침 제주도에 일이 있었다.
몇 년만에, 두모악에 들렀다.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씩 한 곳에 머문다.
그리고 산과 땅 위에 자리잡은 생명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 한 줄기 '빛'이 그곳에 도달한다.
빛은 그 생명들로부터 형체를 꺼내 보여준다.
그때, 그 짧은 첫 순간,
김영갑은 병 때문에 힘을 주기 어려운 손가락을 혼신을 다해 움직여 셔터를 누른다.
그렇게 산과 땅과 생명이 빛을 만나 경이로운 한 컷으로 기록된다.
빛이 들지 않는 우리 집 한 쪽 벽에
그 소중한 빛을 담은 사진을 걸었다.
지금은 마당 가득 햇살이 넘치지만,
두모악의 빛은 여전히 더 밝게 빛나고 있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여러 이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루 게릭 병으로 오랜 시간을 고통했던 사진 작가 김영갑은 제주의 바람과 빛을 사진에 담다가 2005년 제주에서 빛으로 돌아갔습니다. 폐교를 작업실로 바꾼 그의 갤러리의 이름은 '두모악'입니다. www.dumoa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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