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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몸의 기억



ⓒcopyright by 나람



<몸의 기억>



봄.


온기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다.

봄은 왔으나 그건 달력에 적힌 날짜에 불과하다.

따스함, 더위,

이런 느낌을 잊고 살았던 지난 계절이

아직 몸속에 자리 잡고 있다.


얇은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선다.

낯선 온기 속으로.


또 시간이 흐르면, 

내 몸이 추위에 대한 느낌을 다시 꺼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는 건,

단지 지난 수 십 년간의 경험에 불과하다.


경험은 사실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사실은 절대적이지만 경험에게 절대적인 가치란 무의미하다.

경험에겐 패턴과 흐름만 있을 뿐이다.


수많은 경험은 새로운 사실 앞에서는 당황하고 얼굴을 붉히며 길을 묻는다.

그리고 이내 자신만의 패턴과 흐름을 만들고, 자신의 말을 정당화하는 법을 배워간다.

긴 시간이 흘러도 경험은 언제나 사실 앞에 무릎 꿇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

그것이 경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는 경험의 눈을 통해서만 사실을 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