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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삶 (4) - 고요함과 풀향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 (4) 고요함, 풀향기


처음으로 느끼는 변화는 공기와 소리였다.


아침에 창문을 연다.

창틈으로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흘러들어온다.

주변이 온통 수령이 몇십 년씩 되는 나무로 가득해서 그런지 깊고 짙은 향기가 느껴진다.

나무들 덕분에 새벽과 밤엔 언제나 습도가 높은 편이다. 언제나 그즈음에 마당에 나가보면 잔디가 촉촉이 젖어 있다.

식물들의 생체활동에 따라 습도가 조절되는 셈이다.

이런 점이 개발제한구역이 주는 선물이다.


새벽 안개가 낀 마당의 모습


ⓒcopyright by 나람



새벽엔 주로 새소리에 잠이 깬다.

집 주변엔 이름 모를 새들이 많다.

새들은 번갈아가며 새벽부터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낮에도 숲 깊은 데서 뻐꾸기 같은 새들이 노래를 한다.

침실 창문 바로 앞 감나무에 하루 종일 크고 작은 새들이 번갈아 다녀간다.

새벽에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새들의 활동이 시작된다.

그리고 낮 시간 동안은 잠잠하다가 저녁이 시작돼서 해가 슬슬 자취를 감추면

새들은 다시 무리를 지어, 혹은 혼자서 집 앞의 나무와 풀 사이로 나타난다.

그리고 분주히 날아다닌다.


커다란 거실 창으로 하루 종일 따스한 햇볕이 가득 들어온다.

그 고요함과 향기와 따스함 속에서 우리는 평화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살 때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를 하고 차를 타고 일을 하러 간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집에 들어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잠이 든다.

달라진 거라고는 그것뿐이었다.


고요함과 향기.


가을의 중간쯤에 이사를 했기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온도가 낮아지고 있었다.

밤과 낮의 온도차이가 큰 편이다.

덕분에 감나무에는 감이 빠른 속도로 익어가고 있었다.

하나씩 세어보니 100개 가까운 열매가 하나같이 '감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모든 변화가 아름다웠다.

한 달 가까이 그런 변화에 감사하며 살았다.

그렇게 우리는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갑자기 찾아온 풍요로움에 적응하고 있었다.

특별한 변화 없이 큰 변화를 경험하면 일정 부분 무감각해지는 게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때는 그걸 모르고 지나간다.

어쩌면 그런 크고 작은 굴곡들이 삶을 이루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따스한 태양 아래 수영복만 입고 일광욕을 하던 사람에겐 소나기조차 당황스러운 법이다.

그리고 소나기 같은 작은 방해요소들이 자주 나타나면 그건 갈등이 되기도 한다.

물론,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도시에서 살던 두 사람이 거기서 겨우 한 발짝 벗어났을 뿐인데,

커다란 평화를 만나고 그 과정에서 작은 방해요소를 만났다면,

그 정도쯤이야 제법 해볼 만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첫 번째로 나타난 '소나기'는 동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