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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교도소에서 태어나 엄마를 구한 소년



교도소에서 태어나 엄마를 구한 소년


인도의 감옥에서 태어난 소년이 자신의 어머니를 석방하는 데 필요한 5천 루피, 우리 돈 10만 원의 보석금을 마련하는 데 19년이 걸렸다. 실제로 돈을 벌기 시작한 시점으로 보면 2년이 걸렸지만, 이 사건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19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기가 막힌 얘기가 있다.


6월 1일 자 뉴스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993년, 소년의 어머니 비자야 쿠마리(48세)는 이웃 주민의 살인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된다.

1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당시 임신 5개월이었던 비자야는 혐의를 부인한다.

1994년 항소심에서 5천 루피에 보석이 허용된다.

그녀의 남편이 편지로 다른 여자와 재혼할 것이라고 알리고 보석금 납부를 거부한다.

비자야는 감옥에서 둘째 아들 칸하이야를 낳는다.

칸하이야는 여섯 살까지만 교도소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한다.

그 이후에는 소년원, 위탁가정, 학교 기숙사 등을 전전한다.

칸하이야는 열 여덟 살이 되던 2012년, 독립해서 돈을 벌기 시작한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봉제공장에 취업해서 밤낮으로 일을 한다. 칸하이야는 5천 루피를 마련하고 어머니는 20년 만에 석방된다. [관련 기사]



인도의 사법시스템이 이 사건으로 세계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인도의 사법시스템은 증거가 빈약한 자백에 의해 판결을 하는 경우가 많고, 판결이 자꾸 미뤄지며,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한다. 기사에 의하면 비자야 역시 미결수 상태로 감옥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서 보면 인도의 법관들이 힘없는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알 수 있다. 법관이 지켜야 할 것은 법이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에 대해 법을 어떻게 적용해서 사회를 공정하게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인 것이다. 사법제도가 복잡하고 어려운 것 역시 그 근간에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운명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공정한 판단은 더욱 중요해진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사법적인 판단은 과거로부터 늘 권력자들의 몫이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이 몇 건 연결되어 떠오른다.


일방적으로 한 여성을 따라다니며 연인이 되기를 강요하던 폭력적인 남자의 이야기를 경찰은 단순한 연인 사이의 다툼으로 인식했었다고 한다. 결국, 남성의 폭력에 의해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추락한 여성은 크게 다쳤다. 뇌출혈이 심각한데 아직까지 수술을 할 수도 없는 상태라고 한다. [관련 기사]

이 여성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남성의 스토킹과 폭력 때문에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연인 사이의 말다툼'이라는 남성의 설명을 듣고 그냥 돌아갔다. 스토킹 사건에 대한 대응 메뉴얼이 없었던 걸까?


또 다른 기사는 성폭력 관련 사건이다. 큰 사건이 나고 그 용의자를 체포했는데 전과를 보니 아동 성폭력 전과가 있었다. 또 다른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이 거의 다 그렇다.


이 사건들과 인도에서 벌어진 사건이 연결되어지는 건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교양'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성폭력 전과를 가진 사람들을 '교정'하기 전에 '치료'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정기관이 실제로 전혀 교정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게 목적이라면, 단순히 구속해서 몇 년의 실형을 살게 하는 것보다 우선해서 다시는 재범을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선진국에서 웬만한 지식인들은 다 '교양'으로 알고 있는 '범죄'와 '심리치료'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법기관의 인식은 과연 어떤 수준인지 궁금하다.

정말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게 그들의 의식 속에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다.

학교에 다닐 때 공부만 열심히 하고 책도 영화도 거의 보지 않던 샌님들이 사법고시를 통과해서 법관이 되고 검사가 되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저울질하고 판단하는 게 타당한 일인가?

그렇게 사법기관에서 경력을 쌓고 나면 이제 정치판으로 자리를 옮겨 법을 만드는 일을 한다.


그런 사람들이 만드는 법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회에 대한 책임 따위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각성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영원히 계속된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가 보여주는 것도 그런 거다. 권력을 잡고 자신을 미화하고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게 대부분의 권력자들, 그들의 생존방식이었다. 


21세기, 우리는 무책임한 권력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갖게 됐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할 줄 안다. 그러니 시민들이 침묵하면 그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침묵하면 우리 사회가 인도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사회와 제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려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