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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 아닌 나, 무의식과의 대화



아닌 나, 무의식과의 대화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 

나도 모르게 하는 반응, 

나도 모르는 사고방식, 


'나도 모르는 사고방식'이라는 말이 제일 이상하다. 행동이나 반응은 늘 경험하는 거지만 사고방식마저 내가 모르는 거라니, 정말 불편해지는 느낌이 든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자신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Erinnerungen Träume Gedanken'에서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라고 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모르고 하는 모든 걸 알고 하는 수준이 되도록 하는 게 인생이라는 얘기다. 무의식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의식. 그 이유는 여러개의 무의식 층이 가로막고 있기때문이다.



복잡하다.


'자기'와 '자아'로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건 쉽지않다.

분리를 하는 순간 이미 둘 중 하나는 내가 아닌 게 되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듣는 내가, 내게 말하는 진짜 '나'의 소리를 잘 못 알아듣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그 소리를 명쾌하게 듣고 실현해 나가는 게 융이 말한 그의 생애-자기실현의 역사다. 생각해보면 이건 종교에서 하는 얘기와 비슷하다. 융의 내면의 소리는 기독교에서는 성령으로 불교에서는 참나로 표현된다.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로 융의 경우는 원형, 아니마, 아니무스 등의 심리학적 방해물들이 등장한다. 종교에서는 주로 자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표현한다. 그게 자아의 본성이다. 


모든 병의 근원이 무의식에 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무의식에 기록된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모든 정보가 기록되는게  무의식의 속성이다) 기억들이 대상과 사건에 따라 미리 설계된 행동을 하도록하고 그 과정에서 호르몬과 같은 화학물질이 배출된다. 몸에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쁜기억'이 신체에 긴장을 유발하고 세포를 죽이게 되고 결국 병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런 부정적인 기억을 무의식에서 '삭제'하면 몸이 좋아진다는 얘기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한 번 해볼만도 한 일이다. '삭제'말이다.

그런 '삭제' 혹은 '수정'의 기법들이 제법 많다. EFT, NLP, 호오포노포노 등은 이미 서점에 관련 서적이 많이 나와있다.


물론 해 봤다.

전부.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다. 

차차 소개하기로 하고, 하던 얘기를 계속하자면, 


과거에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던, 그래서 종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내용들이 20세기 후반에 와서 '과학'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과거엔 미신처럼 여겨지던 지식들이 이제 수준 높은 앎의 영역으로 대접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물론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다. 아직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또 다른 내가 내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논리나 과학말고 감각을 동원한 경험으로는 느끼지 못한다. 인간에겐 감각적 경험이 중요하다. 감각이란 바로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긴장되는 자리에 간다.

'전혀 긴장하지 않은 것처럼 여유있게 행동하자.'

속으로 다짐한다. 하지만 말을 더듬고 물을 엎지르고, 내 생각은 한 마디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심지어 상대의 얘기도 제대로 못 듣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여유있게 행동하겠다는 생각을 한 건 바로 '나'다. 그리고 긴장하고 실수를 한 것도 '나'다.

대체, 의식하고 있는 나는 왜 내 삶의 주도권을 의식하지 못하는 나에게서 찾아오지 못하는 걸까?



이제 진짜 '나'에게 말을 걸어 봐야겠다.


내가 묻고 내가 대답을 한다?

묻는 나는 누구고 대답하는 나는 누구지?


어떻게 하면 내가 내게 말을 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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