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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

미드를 보는 자연주의자



미드를 보는 자연주의자


자연주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얘기들이 나온다.

문학사조로서의 자연주의, 철학으로서의 자연주의, 미술의 제작태도로서의 자연주의, 영화사조로서의 자연주의 등등


한자사전에는 이렇게 나온다.

자연()을 유일(), 절대() 또는 근본() 원리()로 보고, 모든 현상(), 과정()을 자연()의 힘에 귀착시키려는 주의() 


어렵다.


이런 생각을 갖는 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산다는 건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뭐, 어떤 생각이라도 지키며 살아가는 건 다 어렵겠지만…

자연주의를 검색하다보면 누드모임을 하는 카페도 나온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이 블로그에 자연주의라는 간판을 달았지만 실상 내가 추구하는 삶과 사전적인 의미의 자연주의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것,

그렇다면 미리, 그런 오해가 생기기 전에 어느정도 명확하게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포스팅한 제목들을 보면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슨 자연주의자가 미드를 보고, 뉴스를 보고, 컴퓨터로 블로깅을 하냐?'


미국드라마(미드) 포스터 모음 이미지


사실, 내가 자연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출산에 대해 알아가면서다.

흔히 말하는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수술 이외에 다른 출산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예비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낳는 게 최선일까를 고민하다가 만난 단어가 자연주의 출산이었던 것이다.

자연주의 출산은 의료진의 개입 없이 산모 스스로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의 그 '비문명 상태의 출산'과는 분명히 다른 방법이다.

아직까지 이런 출산에 대해 걱정하는 시선도 많고 비판적인 여론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공부한 과정에서 얻은 것은 자연주의 출산이 가장 인간다운 출산방법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시도했고 (아내의 용기가 가장 큰 자원이었다) 성공했으며, 

그 과정을 여러사람과 나누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 결심 후 돌아보니 우리는 대도시에서 조금 벗어나 어느 숲 속에서 살고 있었다.

작지만 텃밭도 하고 있었다.

몇 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도시생활이 몸에 배어서 인터넷이 없는 건 상상도 못한다.

스콧니어링이나 어니스트 시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같은 진짜 자연주의자들의 시각으로 보면 

우리의 도전은 가소로울 것 같다.

감히 자연주의라는 말을 쓰는 것도 망설여지게 된다.


자연주의자들 사진, 왼쪽부터 스콧 니어링, 어니스트 톰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왼쪽부터 스콧 니어링, 어니스트 톰슨 시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주의자다.

삶의 뿌리가 도시 한 복판에 있지만 의식이 향하는 곳은 '원래의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자연'이라는 말 이외에는 붙일만한 이름이 없다.

날마다 그곳을 향해 한 발씩 움직여 가는 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밤마다 TV로 미국 드라마를 보고, 

컴퓨터는 24시간 온라인 상태지만,

아기에겐 완전한 모유수유를 하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텃밭에서 나는 채소를 먹고,

인공조미료는 멀리하고,

가능한 자동차는 움직이지 않으며,

인간의 '본성'을 찾는 것에 마음의 중심이 가 있는 

우리는 '자연 주의자'라는 걸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