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동물들과 이웃하기, 혹은 동거하기 (2)




6. 동물들과 이웃하기, 혹은 동거하기 (2)


정말 충격적인 사실은 졸리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지성이는 지치지 않고 달려요, 축구선수 박지성처럼."


지성이와 졸리는 초코와 쿠키와 함께 산다. 넷이서 한집에 사는 거다. 나는, 뭐 당연한 얘기지만,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승마복을 입은 그 여자는 내 표정에는 관심도 없었다. 눈을 반짝이며 말을 바라보는 아내에게, 네 마리의 말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었다. 두 마리는 사람 이름이고, 다른 두 마리는 음식이름을 가진 네 마리 말은 우리 집에서 뛰어가면 10초도 걸리지 않는 곳에 살고 있는 이웃이었다.


"지금은 좁은데 갇혀 있지만 원래 경주하던 애들이에요."


퇴역한 선수들이었다. 나이도 어리다. 졸리를 제외하면 모두 사춘기를 막 지난 청소년급이다. 경기 성적이 좋지 않아서, 혹은 작은 부상을 입고, 또는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경주를 못 하게 된 말들이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녀석도 있지만 유럽이 고향인 녀석도 있었다. 

이 녀석들은 몽골이나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의 말들과는 다른 종류다. 키가 크고 날렵한 이 녀석들은 아라비아와 유럽에 뿌리를 갖고 있다. 미국-그러니까 아메리카 대륙에서 볼 수 있는 녀석들은 상대적으로 키도 덩치도 작다. 카우보이들이 한 손으로 고삐를 잡고 타는 모습을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런 종에 비하면 졸리와 지성이는 일반인과 농구선수 정도의 차이만큼이나 큰 편에 속한다. 몽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들은 미국 녀석들보다 더 작은편이다. 거의 조랑말 급의 작은 체구를 가졌다. 

몽골 녀석들이 라이트급 레슬링 선수라면, 미국 아이들은 평범한 체구를 가졌고, 졸리네 유럽파는 농구선수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길게 설명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그런 건 관심조차 없었다. 그저, 한 마리도 아니고 네 마리씩이나 이 산속에 있는 이유가 궁금할 뿐이었다. (물론 승마복을 입은 그녀의 관심과 내 관심은 다르겠지만.) 그녀는 우리가 말들의 존재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요!"


아내가 말을 한 번 탈 수 있냐고 물어보자 이렇게 얘기했다. 그리고 두 사람, 아내와 승마복을 입은 그녀는 함께 말을 타기 위해 집 뒤쪽 공터로 걸어갔다. 



공터는 보기보다 훨씬 넓었다. 대략 사방 100미터는 될 것 같은 크기였다. 웬만한 학교 운동장 정도는 될 규모다. 졸리에게 안장을 얹고 고삐를 잡은 청년이 뒤를 따랐다. 아내와 승마복을 입은 그녀는 말과 승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여전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로 한 발쯤 뒤쪽에서 청년과 나란히 서 있었다. 


아내가 말 위에 올랐다. 이 과정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말 위에 오르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말의 키가 커서 발을 등자에 끼우기도 쉽지 않았다. 먼저 고삐를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 안장 손잡이를 잡는다. 아내는 발이 등자에 닿지 않아서 결국 의자를 말 옆에 놓고 올라가서야 왼쪽 발을 등자에 끼울 수 있었다. 팔과 다리에 힘을 주며 왼쪽 다리를 펴서 몸을 말과 밀착시킨다. 그러고 나서 오른쪽 다리를 안장 위로 넘겨서 앉는다. 이제 반대편 등자에 오른쪽 발을 끼운다. 


볼 때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쉽지 않은 동작이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 어렵다. 왼쪽 다리를 펴는 것도 쉽지 않다. 몸을 높이 들어 올리는 게 마치 계단 대여섯 개를 한 번에 올라가는 것처럼 부담이 있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오른쪽 다리를 쭉 뻗을 때 무릎이 펴지지 않아서 안장을 넘어가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말 위에 처음 오르는 게 어려운 건 '두려움'때문이다. 물론 아내는 겁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말과 관련해서는 그랬다. 


아무튼, 이사한 다음날, 우리는 아침을 절반 정도밖에 먹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와 생전 처음 '말'이라는 동물을 직접 만났고, 점심식사시간이 될 때까지 아내는 승마를 즐기고 있었다.


아내의 승마가 계속되는 동안 나는 흥분했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았고,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건 절대적으로 아내가 즐거워했기 때문이었다. 내 상식에서 승마는 소수의 사람만 즐기는 귀족 스포츠였고, 우리가 마주친 상황은 어찌 보면 평생 만나기 어려운 걸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 서 있는 청년이 한국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서도 그 마음은 계속 같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청년이 하는 말을 알아듣기 어려워서 심한 방언을 쓴다고 생각하고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그 청년은 짧게 '몽골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긍정적인 마음이 뒤집힌 건 점심시간이 되자 나타난 두 마리의 진돗개 때문이었다. 한 마리는 '마늘'이었고 다른 한 마리는 '양파'였다. 마늘은 숫놈이었고 양파는 암놈이었다. 둘의 주인은 에쿠우스를 몰고 나타났다. 에쿠우스는 말을 의미하는 라틴어다. 에쿠우스-말을 탄, 두 마리 진돗개의 주인은 초코와 쿠키의 주인이기도 했다. 배가 적당히 나온 중년의 아저씨였다.

검정색 에쿠우스가 우리 집 뒤편 공터에 멈추고 뒷문이 열리자, 이 정신없이 소란스런 한 살짜리 진돗개 쌍둥이가 내 아내를 태운 졸리의 옆쪽으로 맹렬히 달려든 것이다.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출 듯이 가슴이 답답해졌다. 최악의 상황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