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바보 송종국이 지아에게 알려준 '행복의 비밀'
부모가 되는 건 교사가 되는 것보다 어렵다.
한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해가는 모든 시간에, 부모는 그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고 동시에 환경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젖먹이 아기에서 유아로,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가 사춘기를 거치고 성인이 될 때까지, 그리고 성인이 되어 사랑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 이후에도 부모의 교사역할은 계속된다.
아이를 낳은 엄마는 자신의 엄마에게 어떻게 아이를 보살필지 배우고 또 엄마가 살아왔던 것처럼 아이의 교사가 되는 법까지 배운다.
부모의 교사로서의 역할은 이렇게 아이의 성장에 따라 모든 환경과 시간마다, 또 대를 이어서 계속된다. 어떤 사람은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부모들은 - 심지어 교육 전문가조차 - 경험의 부족으로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사실 많은 경우가 이렇지만, 부모는 아이를 통해 배워간다.
'아빠! 어디가?' 8번째 여행지 여수.
방송답게, 어른들은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한 가족을 낙오시키기로 결정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낙오하는 것, 그게 재미있는 거다. 그 재미는 시청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 낙오자는 김성주와 그의 아들 민국이다. 게임에서 졌으니까 한 가족만 남기로 한 규칙대로 두 사람은 섬에 남는다. 나머지 가족들은 작은 배를 타고 최종 목적지로 출발하고, 김성주는 한숨을 쉬며 그 광경을 지켜본다. 그 곁에는 아들 민국이가 표정없는 얼굴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누구라도 그렇듯이 김성주는 낙담한다. 그리고 다른 배를 이용해서 목적지까지 갈 방법을 찾는다.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시간이다.
'아빠, 힘내자!'
아들 민국이가 김성주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소리친다. 아빠를 위로하는 아들. 보는 사람 얼굴에 미소를 만들어주는 장면이다.
게임에서 이긴 네 가족, 여덟 명은 최종 목적지 안도의 선착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장난꾸러기 아빠들의 게임은 계속된다. '아빠! 어디가?' 다섯 가족이 머물 집은 선착장에서 차로 15분 거리. 게임에서 진 한 가족은 그곳까지 걸어서 가는 게 벌칙이다.
아빠들의 눈싸움으로 승부를 가린다.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의 송종국은 이 게임에서 '50대 남자' 한 명과 '운동부족이 분명해 보이는 가수' 한 명에게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패배한다. 나머지 한 명도, 상대적으로는 체력이 우수해 보이긴 하지만, 역시 국가대표 출신 운동선수가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은 아니었다.
믿었던 아빠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걸까? 걸어가는 게 싫었던 걸까? 단지 지는 걸 못 참았을까? 아빠가 탈락하자, 딸 지아는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송종국은 낙심하지 않는다. 뭐, 15분 거리면 걸어도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으니까, 원래 다리가 튼튼한 축구선수에겐 가벼운 일이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 울고 있는 딸을 달래려는 마음으로 주변에 보이는 리어카를 빌려서 급히 상황을 수습한다.
'재밌어.'
아빠가 끌어주는 리어카에 탄 딸의 목소리는 진짜 즐겁기까지 하다.
둘은 짧지 않은 거리를 가는 동안, 소풍 나온 연인들처럼 남쪽 나라에서 만난 이른 봄꽃을 꺾어 주며 부녀간의 사랑을 만끽한다.
우리 부부를 감동하게 만든 건 그 다음 상황에서였다.
먼저 도착한 가족들이 모두 좋은 집을 차지하고 이제 남은 건 최하등급의 두 곳뿐이다.
두 가족이 첫 번째 집에 들어간 사이 민국이는 나머지 집을 둘러본다. 창호지를 발라놓은 낡은 문은 구멍이 심하게 뚫려서 마치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정말 최악의 숙소가 마지막에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첫 번째 게임에서 낙오하고 뒤늦게 자동차로 오는 민국이네에게 거짓말을 해서 함께 걸어온 지아는 미안한 마음에 집을 양보하자고 한다. 마지막에 남은 집이 어떤지는 상상도 못했을 텐데 지아의 예쁜 양보에 모두가 만족하고 송종국은 리어커에 탄 딸과 그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집에 도착한다.
집을 본 지아는 눈물이 나온다. 송종국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아 네가 양보하자고 했으니까, 울지 말고 들어가자.'
그러나 지아는 아직 어린아이다. 눈물을 그칠 줄 모르고 리어커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지아야, 아까 게임에서 져서 아빠랑 걸어왔잖아. 근데 어땠어? 재미있었지?"
지아는 울면서 아빠의 질문에 대답한다.
"응 재미있었어."
세상이란 이런 거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그러니 이제 울지 말고 이 '귀신이 나오는 집'으로 들어가 보자.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렇게 이해한 것 같았다. 지아는 울음을 그치고 귀신 나오는 집으로 들어간다. 집은 생각보다 허름했고, 우려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귀신도 만날 수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허름한 집에서 봄꽃보다 더 밝은 웃음소리로 행복을 꽃피웠다.
이제 지아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낼 수 있는 비밀을 배운 것 같다. 작은 에피소드였지만 그리고 게임에서 져 힘든 벌칙을 받았지만, 그 속에서 어린 지아는 기쁨을 느꼈고 행복의 열쇠를 얻은 거다.
낙심할만한 상황에 대처하는 어른들의 방법과 아이들의 방법이 모두 다르다. 아이에게 배울 것도 있었고 어른에게 배울 것도 있었다.
부모가 되는 건 교사가 되는 것보다 어렵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건,
때로는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서 뭔가를 배워야만 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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