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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자연주의 출산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9) 병원을 찾아라



9. 병원을 찾아라


"이 병원에서 출산하는 건 안될 것 같아."


우리가 다니는 산부인과 병원은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었다. 물론 집 근방에도 산부인과 병원이 있었다. 거기서 산전검사도 했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 병원에 가는 걸 싫어했다. 이유는 감정적인 것이었다.


"내가 모르는 걸 물어보기가 두렵게 만들잖아."


그 병원 분위기는 그랬다. 


일반인은 모르고 의료인은 다 아는 사실이 있다. 그리고 환자들은 대개 그런 걸 질문하게 된다. 의료인의 입장에선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종류의 '상식적인' 수준의 질문에 답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개인적인 차이가 많겠지만 그런 이유로 조금씩 지치고, 그러다 보면 말투가 퉁명스러워진다. 특히 오후에는 더 그렇다. 아내는 주로 오후에 병원 간다. 그리고 뭔가 질문을 하면 (상대는 대개 A라는 간호사다) 한심하다는 표정과 귀찮다는 목소리로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를 섞어서 낮게 읊조린다. 그러면 아내는 그걸 알아듣지 못한다. 대체로. 그러면 다시 질문을 한다. 이번엔 짜증이 더해진 에너지가 함께 전달된다. 그러면 아내는, 이번에도 역시 못 알아들었음에도, 더이상 질문을 하지 못하고 병원을 나선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병원을 바꾸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조금 비싼데 어쩔 수가 없어."


고급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비용이 나가게 돼 있다. 그 서비스에는 물론 '친절'도 포함된다.


"환자가, 물론 나는 환자가 아니지만, 어쨌든, 환자가 편한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이건 단순히 편하고 말고의 문제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고. 심리적으로 안정되느냐 아니냐에 따라 병이 호전되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한다는 얘기도 있잖아."


그런 얘기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게 사실이다. 양자물리학과 심리학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제 사람의 감정과 신체 사이의 관계는 그야말로 상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반대할 명분이라고는 집에서 조금 멀다는 것 말고는 하나도 없는 셈이었다. 그리고 나는 반대할 마음이 전혀 없기도 했다. 나 역시 그 병원이 못마땅했던 거다.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다른 환자들과 간호사들 사이에 벌어지는, 그런 긴장감 흐르는 대화를 여러 번 듣게 된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서 보지도 않는 책을 펼친 채로 나는 조금씩 무거워지기만 하는 공기의 중압감에 날마다 시달렸던 것이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입장도 아니고 더구나 아내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임신 중이니까.


강남의 대형 산부인과 병원 사진


우리는 10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는 강남의 유명 산부인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병원에서 하라는 모든 검사를 다 하지만 않는다면 이 병원의 진료비 역시 일반적인 병원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급 백화점에서나 만날 수 있는 친절함이 10층 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거기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보너스로 담당 의사가 너무나도 친절하고 세심했다.


"옮기기 정말 잘했다. 그렇지?"


왕복 기름값과 주차요금(발렛파킹을 해주고 그 비용을 받는다.)을 지출할 만큼의 값어치는 충분했다.


"다음 주엔 기형아 검사를 해야 해요."


친절한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이 기형아 검사를 할 시기였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너무 늦게 알면 방법이 없다. 기형아를 임신했을 확률은 사실 거의 없다. 하지만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확률 때문에 검사를 꼭 해야만 한다.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초음파검사로 투명대의 두께를 측정한다. 그다음 혈액검사로 3개의 표지자인 AFP, uE3, HCG등을 측정하여 가능성을 판단한다. 다음에 의심이 되면 양수검사 등 다른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어렵고 무거운 얘기가 한참 흐른다.


"확률이 얼마나 될까?"


무거워진 분위기의 진료실을 나오며 아내가 물었다.


'자가용을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보다 낮다'고 얘기한 걸 벌써 잊은 건 아니다. 다만 어떤 일이던 자신에게 일어나면 그건 확률이 100%가 되는 거다. 반대의 경우는 확률이 0%. 그러니까 확률에 따라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건 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어떻게 할까?"


아내는 기형아 검사를 받지 않을 경우에 대해 내 의견을 물었다.


"만일 기형아를 임신했다고 하면 수술이든 시술이든 그걸 바로잡아 주는 거야? 아니면 낙태를 유도하는 거야?"


태아 수술 장면, 의사의 손가락을 잡고 있는 태아의 손과 팔.


태아수술Fetal Surgery이 시행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미국을 기준으로 1980년대가 그 시점이라고 보면 이미 30년이나 지났고 그만큼 기술적인 성장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태아수술을 통해 교정할 수 있는 증상도 한계가 있고,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태아수술이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대개 낙태를 선택하게 된다는 얘기다.


며칠 동안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난 기형아 검사는 하지 않을까 봐."


아내는 잉태한 생명을 어떤 이유로도 죽이고 살리는 결정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지만 자연의 섭리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부부도 임신이 되지 않기도 하고,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사람도 쉽게 아이를 갖는 경우도 있고, 생명은 그렇게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생명. 자신의 뱃속에 자리 잡은 4mm정도의 작은 조직을 아내는 그렇게 불렀다.


예약한 날짜를 넘기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 


병원에 다시 가기로 한 건 그다음 달이었다. 


만일 우리가 기형아를 낳게 된다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준비를 하기로 했다. 만일 기형을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우리는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에겐 가능성이 아주 낮았지만 이런 주제로 고민을 하다 보니 세상에는 기형아를 낳고 키우는 엄마들이 생각보다 참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 대해 잠시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검사결과는 모든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마음 속에는, 혹시라도 이 아이가 기형이었다면 겪었을 죽음과 삶의 고비, 그리고 태어난 다음에 겪게 될 사회적인 어려움에 대해, 진정으로 아파하며 상상했던 모습이 남아있다.


뱃속의 생명이 정상이라는 의료진의 소견이 임신을 한 가족에게 얼마나 안도감을 주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뭘까? 다른 많은 개체와 비슷하면 정상일까? 혹시 우리가 비정상으로 보는 개체 가운데 정상보다 더 우수한 부분은 없을까? 

만일 사회적인 배려만 있다면 그 비정상적인 개체가 사회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걸 우리는 보아왔다. 그리고 그런 사례는 모든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 하지만 그게 내 가족의 일은 아니었으면 하는 것 역시 사람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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